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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제가 ‘동의보감’
탄생의 원동력?

전세계인들이 한의학에 열광하는 것은 한의학이 수 천 년 동안 인간과 질병, 죽음에 대한 치열한 고찰을 통해 독자적인 치료법을 개발해왔기 때문입니다. 한의학의
독자성은 허준의 동의보감을 빼놓고 설명하기는 힘듭니다. 기존의 성리학적 프레임을 깨고 실용적 한의학을 뿌리내린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조선은 성리학이 전반적인 한의학의 흐름을 주도했고, 철저한 신분제를 존속시키는 수단으로 활용
됐습니다. 서얼이었던 허준에게 성리학과 유교사상은 큰 장벽이었습니다.

때문에 동의보감에는 음양오행이라는 성리학적 원리를 배척하고 도교의 정기신을 활용해 질병을 설명하며 한의학의 새 틀을 짜고자 했습니다. 이는 학문에만 치우쳐 임상을 바탕으로 한 의서가 전무했던 상황을 개탄했던 선조의 의지와 일맥상통합니다. 선조는 1596년 허준, 정작, 양예수 등 6명에게 동의보감을 만들라고 했지만
정유재란으로 일시중단 된 편찬작업은 결국 허준 혼자 마무리합니다. 후에 1610년 역경 속에 동의보감은 후대 왕인 광해군에게 바쳐지고 이를 본 임금은 크게 감탄합니다. 광해군은 지긋지긋한 서얼의 족쇄에서 허준과 그의 집안을 해방시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허준에게 ‘서얼’은 성리학 배척의 불씨였지만 동의보감 탄생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예방접종
예방접종도 조선시대부터 시행돼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인두법이 그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전염병의 일종인 천연두가 큰 골치덩어리였습니다. 천연두로 4세 이전의 아이들의 절반이 사망했기 때문에 이는 조선의 선결 과제였습니다. 천연두를 물리칠 방법으로 흔히 알려진 종두법은 지석영이 19세기에 소의 고름을 이용한 우두법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다산 정약용이 인두법을 소개해 한의사들이 천연두 치료법으로 사용해 왔던 것입니다. 인두법은 천연두 환자의
고름이나 딱지를 가루를 내어 병에 걸리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게 코로 흡입케 해
면역력을 높이는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인두법이 최초의 예방접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 임금
정조 치료기로 본
한방의 혜안
잘못된 역사적 상식이 또 있습니다. 바로 정조 암살설입니다. 한의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터무니 없습니다. 정조가 평소 앓던 병은 종기인데,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자기 뜻을 이루지 못하면 생깁니다. 그러므로 차가운 성분의 수은을 처방한 것은
진정을 돕는 정당한 것이지 암살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조는 후에 인삼 등이 처방된 약을 복용한 뒤 별세했습니다. 정조의 진짜 사인은 종기를 만든 스트레스, 바로 화병입니다. 정조는 11살 때 부친 사도세자를 사지로 내몬 거대한 노론의 힘을 보고 공포감에 시달렸습니다. 실제로 왕이 되어서도 그들을 통제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방에서 발견한
신종플루 치료제

한의학은 역사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특히 현대의학은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는데, 한의학은 이를 오래 전부터 시행해온 치료의학입니다. 이는 한 때 현대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신종플루가 한방성분인 대회향으로 만들어진 타미플루가 개발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대회향은 더운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과거 선조들은 대회향
같은 더운 성분의 음식을 먹어 전염병을 예방하고 면역력을 높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지혜의 집약체인 한의학은 전염병과 바이러스를 치료하면서 발전해 온 훌륭한 실용 의학입니다.